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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사극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 여운이 많이 남는 사랑

by zeromi3 2025. 2. 20.

 

'옷소매 붉은 끝동'은 궁녀를 상징하는데, 궁녀는 옷소매 끝을 붉게 물들여 입기에

홍수(紅袖)라고도 합니다. 드라마는 자신의 삶을 중히 여기는 궁녀와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인 왕의 궁중 로맨스 사극으로, 

의빈 성씨 덕임과 조선 제 22대 임금 정조의 사랑 이야기 입니다.

1. 드라마 개요

- 제목 : 옷소매 붉은 끝동

- 장르 : 사극, 로맨스

- 출연 : 이준호, 이세영, 강훈, 이덕화, 박지영, 장희진 외

- 방송기간 : 2021.11.12~2022.1.1

- 방송 횟수 : 17부작

- 기획/제작사 : MBC/SLL, (주)위매드, 엔피오엔터테인먼트

- 원작 : 강미강 '옷소매 붉은 끝동'

- OTT : Wavve, coupang play

 

2. 줄거리

 

궁녀 성덕임은 어릴 적부터 궁에 들어와 궁녀 교육을 받으며 동궁의 지밀나인으로 성장합니다.

흣날 정조가 되는 이산은 덕임과 함께 왕위에 오르기까지 여러 일을 겪으며 서로 더 이끌리게 됩니다.

 

덕임은 궁에서 친구들과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목표였으나, 이산을 사랑하면서 갈등을 하기 시작합니다.

몇 번의 위기 끝에 덕임은 후궁이 되고, 아들을 출산하여 세자에 책봉됩니다.

세자가 홍역을 앓다 죽게 되면서 덕임도 같은 병세로 죽게됩니다.

 

왕의 많은 여인 중 한 명이기보다는 자신으로 살기 원했지만,

결국 사랑을 위해 이산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합니다. 

다만, 왕으로의 위치 때문에 정조는 덕임에게

한 여자의 남자이기보다는 왕으로 엄격한 자세를 취하게 되고,

덕임의 마지막 순간 '다음생에는 알은 체도 말라'는 말을 들으며 떠나보냅니다.

 

마지막회에서 나타나는 장면으로 덕임은

아마 그 끝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은 아닐 것이라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산과 함께하고자 한 덕임의 선택은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3. 관전포인트

3-1. 배우

 

정조 이산의 역에 가수 2PM출신인 이준호 배우와

아역부터 탄탄한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이세영 배우가 덕임을 연기하여 

어디에도 없을 비주얼 커플로  많은 관심과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MBC연기대상 베스트 커플상)

 

또한 빠질 수 없는 감초역할로 덕임의 스승인 서상궁역의 배우 장혜진과

이산의 호위무사인 강태호역의 오대환 배우가 웃음을 선사합니다.

 

덕임의 궁생활의 활력소이자 삶의 의지가 된 궁녀4인방에는 이민지 배우, 아율리 배우, 이은샘 배우가 

함께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3-2. 궁녀의 삶

옷소매 붉은 끝동은 실존 인물인 정조와 의빈 성씨의 이야기를 고증하여 나타납니다.

특히 덕임을 통해 보여지는 궁녀의 삶은 흥미롭습니다.

 

궁녀(宮女)는 왕족을 시종하거나 궁의 행정관리 및 실무를 담당하는 여성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여관(女官), 여시(女侍), 시녀 (侍女), 궁첩(宮妾) 등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내명부와 세자궁 소속으로 정5품부터 종9품까지 품계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후궁(後宮)이 될 경우 정 1품 빈(嬪)부터 종 4품 숙원(淑媛)의 품계가 내려집니다.

 

궁녀는 신분, 조상 건강 등 까다로운 조건으로 선발하였으며,

견습 나인은 15년이나 궁중법도, 한글, 천자문, 대학, 소학 등을 교양을 익혀야 했습니다.

또한 궁에 들어오면 늙어 병들기 전까지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다만, 모시는 분이 승하할 경우 3년 상을 치른 후 집에 갈 수 있었으며

결혼이 불가하고 오직 왕을 상대로만 연애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4. 드라마 감상평

지금까지 본 사극 중 최고로 꼽을 만큼 사극의 절제함과 아련한 사랑이야기가 

여운을 많이 남기는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엔딩장면은 모든 시청자들이 각자 해석으로 원하는 엔딩으로 생각 할 수 있도록 

열어두어 만족스럽습니다.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불편하지 않는 범위의 드라마 장면을 만들어 냅니다.

 

정조가 1786년(정조 10)에 직접 후궁 의빈 성씨를 애도하면 쓴

묘지명 <어제의빈묘지명>의 내용을 보면 드라마의 장면이 떠오르게 됩니다.

빈은 나면서부터 밝고 총명하여 돌이 지나자 능히 이름을 구분할 줄 알았다. 용모가 깨끗하고 행동은 단정하고 상서롭고 온화했다. 열 살이 넘어서 궁중에 뽑혀 들어왔는데 모든 왕실 친척 여인들이 높은 집안 혈통인 줄 알았고 타고난 기품이 남달라 능히 겸손을 지니고 검약을 이행했다. 의리의 큰 부분을 밝게 분별하고 굳게 지키는 바가 조금도 변하지 아니하였다. 처음 승은을 내렸을 당시 내전(효의왕후)에게 아직 후사가 없다고 슬프게 울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사양하였고 죽어도 명을 따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나는 감동하여 다시 다가가지 않았다. 15년이 흘러 널리 후궁을 뽑고 나서 다시 명을 내렸으나 빈은 또 고사하였는데 사속(하인, 노비)을 책벌하자 스스로 명을 받들었다. 당석(잠자리) 한 달에 임신을 하여 임인년(1782년) 9월에 원량(왕세자)을 낳았다. 그 해에 소용으로 봉했고 금세 품계가 올라 의빈이 되었으니 아들이 왕세자가 되어서였다. 이에 더욱 스스로 삼가고 두려워하며 내전에게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정성껏 예를 갖췄다. 시침(밤에 웃전을 모시는 일) 할 때 말하기를 "이제 나라의 형세가 의탁할 데가 있지만 위로는 내전(효의왕후)이 있고 또 후궁(화빈 윤씨)이 있습니다."라고 하며 다시 당석하지 않으려 간절히 간하고 사양하며 피했다.